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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Wine N Korea

Coffret Story : 이플 이야기


코프레 세계관 속 상상의 동물 :이플

 


소녀가 있었다. 눈은 맑고 투명한 검정색이었고 머리는 자주빛에 녹색이 살짝 곁들인 색이었으며 소녀의 붉으스름 볼에는 살포시 뿌려다 놓은 듯한 주근깨가 있었다. 아무도 그 소녀의 이름을 몰랐고 출생지, 나이, 어디서 왔는지, 가족은 있는지 아는 거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소녀는 절대 자신에 대한 것을 입밖에 내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고 물어보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것은 소녀의 맑고 깨끗한 눈웃음 뿐이었다.


소녀는 치유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소박하지만 청순한 소리는 사람들에게 안정과 편안함을 주었다. 사람들이 소녀의 소리를 들을 때면 삶에 지쳐 예민하고 날카로운 상태이다가도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에 밝은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소녀의 치유의 힘은 소녀의 눈물에도 존재했다. 소녀가 눈물을 흘릴 때면 소녀의 머리 색깔과 비슷한 눈물이 눈에서 흘렀고, 그 눈물을 받아 마시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벗어나 내가 원하던 곳으로 가게 했다. 마음에 짙게 드리워진 불안의 그늘은 사라지고 해방감과 자유와 용기로 가득 차 올랐다.


소녀는 기꺼이 많은 사람들을 치유해주었다. 손자를 잃은 어떤 할머니는 소녀의 눈물을 마시고 몇 년 전으로 돌아가 손자와 손잡고 있는 때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꼈다. 덕분에 할머니의 눈에는 예전에 우울하고 슬픈 눈빛이 아닌 싱그러운 눈빛이 감돌았다. 홍수로 집과 재산을 잃어버려 망연자실한 사람들에게는 구슬피 소리를 내어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은 절망감을 멀리 내쫓았고 눈물을 모아 앞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와 같이 소녀는 계속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하였지만 영원히는 할 수 없는 것임을 직감했다. 소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때마다 소녀의 머리 색이 점점 옅어짐을 느꼈다. 하지만 소녀는 치유를 멈추지 않았다.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소녀에게 왔고 소녀는 진심으로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려 주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소녀가 구원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날마다 소녀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고, 눈물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시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소녀는 이를 견딜 수 없었다. 조건 없이 주는 존재로 사람들을 도왔지만, 세상의 끝없는 비극들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소녀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 보았지만, 세상은 아직까지도 삭막했고, 희망의 빛으로 물들기엔 너무나 까마득했다. 이내 소녀는 막막함에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울고 울다 머리가 결국 하얗게 새어버렸고, 그녀는 그렇게 하얀 재가 되어 한줌의 흙이 되었다.


그 흙에서 “이플”은 태어났다.


말과 같은 매끈한 몸과, 사슴과 같은 눈을 가진 이플, 하지만 이플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여느 동물과는 다른 신비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플이 된 소녀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이플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치유와 위로를 전했다. 이플의 발에 닿은 땅엔 포도나무가 자라났다. 가을쯤 포도가 익으면 이플은 포도밭을 지나다니며 포도들을 밟았다. 이플이 밟고 지나간 자리엔 아름다운 향이 피어


올랐다. 사람들은 이플이 지나간 자리에 생긴 주스를 떠 마셔보니, 소녀의 눈물을 마셨을 때와 같은 편안함과, 위로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 신비한 동물이 소녀임을 직감했고, 이플을 찾았지만 다시 볼 순 없었다. 사람들은 이플의 흔적을 따라 같은 방법으로 만든 포도즙을 마시며 치유와 위로의 존재였던 소녀와 이플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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